LET THERE BE LIGHT · #19
홍수 후에
After the Flood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9:23
01
다시 땅의 사람으로
창세기 9:18–21 · 참고 5:29
예배와 언약의 황홀경이 지나고, 이제 세상에서 살아가는 노아 가족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펼쳐집니다. 본문은 굳이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고 밝히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했던 바로 그 땅의 이름입니다.
아버지 라멕은 노아가 땅의 수고에서 가족을 위로하리라 기도했습니다(5:29). 그런데 ‘노아가 농사를 시작했다’는 말은 ‘땅의 사람으로 시작했다’로도 읽힙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선물인 포도주(시 104:15)에 노아는 취해 무너집니다.
홍수의 심판을 통과했어도, 사람은 여전히 사람입니다.
02
드러낸 아들,
덮은 아들
창세기 9:22–23
설교는 취한 노아의 모습에서, 그 연약함을 마주한 아들들의 태도로 시선을 옮깁니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고 장막 밖으로 나가 퍼뜨렸습니다. 고대 문헌이 말하는 좋은 아들의 도리, 곧 취한 아버지의 손을 잡아 드리고 아버지를 비방하는 입을 막아 드리는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셈과 야벳은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로 들어가 얼굴을 돌린 채 아버지를 덮었습니다.
본문은 이 행동의 배경이나 가족 관계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설교는 어쩌면 이미 금이 가 있던 관계에서, 이 일이 단절의 방아쇠가 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봅니다.
03
처음 입을 연 말,
저주
창세기 9:24–27
그동안 본문은 노아가 ‘준행하였더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기록된 노아의 첫 말은 저주였습니다.
설교는 묵묵히 순종해 온 노아의 모습에서, 자신의 사명에 몰두한 사람이 곁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는 데는 서툴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본문이 노아의 속마음을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수치 앞에서 저주의 말을 쏟는 모습은 홍수를 통과한 뒤에도 인간의 연약함이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본문을 근거로 함의 자손, 특히 흑인이 저주받은 민족이라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완전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이집트를 살리셨고, 아기 예수는 이집트로 피난하셨으며, 에티오피아 내시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주와 피부색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04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창세기 9:28–29 · 참고 15:16, 4:23–24
노아는 그렇게 950세에 죽고, 9장은 황급히 정리됩니다. 아무리 의롭고 순종했더라도 홍수를 통과한 노아도 인류의 소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설교는 가나안의 훗날 심판을 노아의 저주가 자동으로 실현된 결과로 보지 않습니다. 창세기 15:16을 함께 읽으며, 수백 년 뒤 그들 자신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노아의 모습은 “칠십칠 배”의 보복을 노래하던 가인의 후손 라멕(4:24)을 떠올리게 합니다.
만약 노아에게 아들과 손주를 덮어 줄 여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05
수치 속에서
덮는 기도를 하신 분
누가복음 23:34 · 마태복음 18:21–22
노아와 비교할 수 없는 수치에 놓였던 분이 있습니다. 배신당하고, 벌거벗겨지고,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하신 기도는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라멕의 보복이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용서하는 예수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3장에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셨고, 9장에서는 성숙한 두 아들이 아버지의 수치를 덮습니다.
허물을 덮는다는 것은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책임을 없애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이의 죄를 사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의 상처와 실수는 덮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신앙의 출발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가복음 12:30–31
함께 나누기
- 최근 누군가의 실수나 약함을 보았을 때, 나는 함처럼 드러냈습니까, 셈과 야벳처럼 덮었습니까? 그때 내 마음은 어땠습니까?
- 내게 수치나 불이익이 왔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노아처럼 곧바로 노하게 만드는 나만의 ‘방아쇠’는 무엇입니까?
- 신앙의 열정이나 내 사명에 몰두하느라 돌아보지 못한 가족, 동료, 이웃이 있습니까? 이번 주 그 한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함께 드리는 기도
주님, 우리의 열심이 곁에 있는 사람을 지나치지 않게 해주세요. 다른 이의 연약함 앞에서 존엄을 지키고, 우리의 상처 앞에서는 예수님의 용서를 배우게 해주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웃을 돌아보는 사랑으로 이어지게 해주세요. 아멘.